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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상다반사, 잡담

한 직장에 30년 넘게 다닌 사람의 최후

by 요람, 성장중 2024. 2. 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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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 형편상 반강제로 직업군인을 한 뒤, 한 직장에서 30년 넘게 근무하고 있는 사람이 있다. 

아빠다.

 

내가 독립을 해서인지, 중년 남성 특유의 여성 호르몬 증가 때문인지 카톡의 빈도가 늘었다. 

설 연휴가 다음주이기에 언제 내려오냐고 묻는 카톡을 예상했으나, 의외로 회사 생활은 어떤지 물었다.

취업한지 2년이 지났는데 좀 뜬금없는 질문이다 싶었으나, 이어지는 대사에 바로 납득했다.

 

불경기로 인해 아빠가 다니는 회사의 라인들 중 1개 라인이 통째로 없어지면서 해당 라인에 근무하는 사람들과 나이가 많은 사람들에게 퇴사 압박이 들어온다는 것이다. 

 

3월에 명예퇴직 신청을 받는다는데, 아빠는 걱정하지말라며 당신은 버틸거라고 했다. (어떻게..?)

엄마한테는 비밀로 해달라면서 새벽에 나한테 카톡이 온거면, 어디에라도 털어놓고 싶었나보다.

나도 명예퇴직 소식을 봤을 때 철렁했는데, 본인은 오죽했을까?

 

외벌이로 자식 두 명을 키운 아빠.

투자에 재능이 없음을, 후진은 곧 경제적 사망을 자각한.

평생을 사치 없이 묵묵히 저축해왔다.

그렇게 마련한 집 한 채, 3000CC급 자가용, 1억 전후의 현금, 연금 

 

정년을 채우고나선 양보하는 삶을 내려놓고 싶다며 5천만원짜리 차박용 SUV를 계약하는 여유를 보고 내심 안심했으나 

갑작스런 비자발적 퇴사에는 누구도 익숙해질 수 없나보다.

수입이 끊기는 것도 무서울테지만, 인생의 절반 이상을 함께한 "나를 정의하는 명함"이 없어지는게 두렵기도 할 것이다.

 

아들로서 느낀 감정은 연민이다.

사회인으로서, 직장인으로서 느끼는 이 감정들은 위기감과 무력감이다.

 

내가 태어날 무렵, 아버지 회사가 굉장히 잘나갔다고 한다.

월급봉투를 받던 시절 유일하게 아버지 회사만 근처 식당에서 외상이 되기도 했다는데, 지금은 공단 전체가 많이 조용해졌다고 한다.

 

왜 이 소식이 오버랩되는걸까?

 

부모님은 사회가 말하는 이상적인, 근면성실하며 검소한 (직장인+주부) 부부다.

30년 넘게 그렇게 살아왔는데, 어째서 장수 RISK를 걱정하며 생존을 걱정하고 있지?

지금보다 더 진화하지 않으면 나는 자녀를 키우지조차 못할 것 같다.

 

냉정하게, 그런 집안의 자식으로서 바라본 부모님의 아쉬운 점들을 분석해보자.

① 근로소득 외의 소득을 일시적이고 부정하게 여김 

② 부수입은 예금이자에만 의존 (한 때 10%가 넘는 금리를 목도했고, 경제위기를 겪은 세대라 이해한다)  

시대의 변화 (컴퓨터를 못 쓰신다)에 따라가지 못함

④ 평생 직장과 사회 안전망의 존재를 믿음  

 

①, ④

직장인의 꿈이 퇴사라지만, 직장일도 똑바로 못하는 사람이 자기 사업을 잘할 수 있을까?

본업을 소홀히 할 생각은 없다.

하지만 불공평한 세상이고, 그 요인 중 "재능","학벌", "빽" 등도 분명히 있다.

 

"부업을 찾아 본업의 수입을 역전시킨다." 그건 결과론적인 개념이고, 내가 뭘 잘하는지 알아내는 과정이 곧 부업에 도전하는게 아닐까? 싶다. 

 

② 머리가 좋지 못해 손익분기점을 돌파하는데 5년 넘게 걸렸지만,

주식에서 어느 정도 성과를 이루었고, 다른 분야에도 도전하고 있다.

돈에 빨리 눈 뜬 건, 유년 시절 은수저 애들 사이에서 직장인 아들로서 무력감을 느껴서인데 행운이라 여겨야할지 모르겠다.

 

③ 나도 슬슬 아재가 되어간다.

틱톡, 스레드, 아이돌 등의 신문물을 점점 멀리하게 된다.

AI, 챗GPT, 코딩의 등장에 이용할 생각은 하지 않고 대체될까 걱정만 하고 있다.   

부모님이 인터넷의 존재를 대수롭지 않게 여긴 것처럼, 세대를 넘어 나도 AI와 신문물을 소홀히하고 있는게 아닐까?

나도 미래에 만날 내 자녀에게 우리 부모님처럼 보이지 않을까?

특이점이 논의되는 요즘, 특히 AI에 집중할 필요가 있어보인다.

 

생각이 많아지는 하루였다. 

50대 후반 부모님을 둔 20대 후반의 필수불가결한 고민이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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